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헨리 소총 (문단 편집) == 상세 == 헨리 소총은 비운의 총기인 [[볼캐닉 볼리셔널 리피터]]의 개량형으로, 설계년도를 따라서 1860 헨리 소총(1860 Henry Rifle)으로도 부른다. 44구경 탄(.44 Henry)을 최대 15+1발이나 장전할 수 있었다. 또한 무려 레버액션이라 매우 신속하게 16발을 모두 사격할 수 있었다. 사실 이 이전에도 [[콜트 리볼버 소총]] 같은 여러 가지 연발소총들이 만들어지긴 했지만 조잡한 수준이었고, 헨리 소총만큼 신속하고 실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소총은 없었기 때문에 헨리 소총이 본격적으로 사용된 최초의 연발소총으로 이해하면 좋다. 탄창의 내구성, 전용탄을 사용하는 점 등의 여러 이유로 다른 후속작 소총들에 밀려 군용으로써는 남북전쟁 이후 빠르게 도태되었으나, 민간용으로는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사랑받고 있고 수많은 버전의 레플리카가 있다. [[남북전쟁]] 당시 북군에서 장비한 소총으로써, 그 특유의 연사력 덕분에 남군은 이 총을 "일요일에 장전해서 1주일 내내 쏘아대는 빌어먹을 양키들의 총"이라 불렀다. 북군 내에서도 이 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크나큰 자랑거리로 여겨진 모양이다. 다만 내구성이 스펜서 소총에 비해서 떨어지고, 가격도 그 당시에 40달러나 될 정도로 비싼데다가(남북전쟁 당시 널리 쓰인 엔필드 소총의 단가가 14달러였다.) 무엇보다 [[총검]]이 장착되지 않는다는 단점 때문에 널리 보급되지는 못하였다. 군인들도 사비로 헨리 소총을 구입해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, 일반 보병보다는 [[척후병]], 기습 부대 등 특수 병종들이 자주 사용하였다. 남군들이 이 총기를 노획한다고 하더라도 독자 탄환을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제대로 활용할 수 없었지만, 남부의 대통령 [[제퍼슨 데이비스]]의 경호원과 [[루이지애나]], [[텍사스]], [[버지니아 주]]의 남군들 일부가 장비하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. 남북전쟁 이후에는 [[인디언 전쟁]]에 쓰이기도 했으며, [[리틀 빅혼 전투]]에서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 승리를 안겨 준 소총이기도 하다. 재미있게도 백인들로부터 탈취한 것이 아니라 백인 총포상들에게 돈주고 사서 썼다. 돈에는 국적이 없기 때문이었다. 이외에도 1863년 [[폴란드]]에서 [[러시아 제국]]의 지배에 반발해 일어난 1월 봉기에도 소수 사용되었다. 장전방식은 튜브 탄창 내의 용수철을 탄창 전방 끝부분까지 쭉 밀어낸 뒤에 탄창 앞 마개를 옆으로 비틀어 개방하고, 그 안에 탄환을 일렬로 흘려 넣는 방식이다. [[탄피]]는 총기 상부로 배출된다. 튜브 탄창 용수철과 연결된 작은 장전용 손잡이가 총 아래쪽에 돌출되어있는데, 탄을 하나씩 사용할 때마다 이 손잡이도 성큼성큼 한 칸씩 움직인다. 사격 중 이 부분에 손이 닿으면 급탄불량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. 이 용수철 역시 탄환을 다 넣은 뒤 탄성만으로 제자리로 돌려놓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잡고 원위치시키는 것이 정석. [[Forgotten Weapons]]의 진행자 이안 맥컬럼도 이걸 지키지 않는 바람에 사격장에서 탄이 폭발해 파편상을 입었다. [[파일:HenryX.jpg]] [youtube(weSSRDr7wuk)] 21발의 탄환을 장전할 수 있는 3연장 회전식 튜브 탄창 모델이 존재하지만 시제품에 그쳤고 더 생산되지는 않았다. 개량 총기로 [[윈체스터 M1866]]이 있다. [youtube(ufgjTIR_r5I)] 최근 이를 기반으로 .410 산탄을 사용하는 민수용 산탄총이 나왔다. 이후 로딩게이트를 사용해 삽탄할 수 있도록 개량되었다. 현대 총기 교리에 맞게 [[마를린 파이어암즈|마를린]]의 레버액션 소총들 처럼 탄피 배출구 위치를 측면으로 변경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